Column/Memoir

감사의 미로

2023. 8. 12. 17:42

The Maze of Gratitude

 

22살 무렵, 난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요 몇 년간 어쨌든 간에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서 손에 닿지 않는 것을 붙잡고 싶어서 그게 구체적으로 무언지도 모르면서 거의 강박적이라고 보일 그 마음이 어디서 솟아나는지도 모른 채로 난 계속 어정쩡한 공부와 일만을 계속했고 문득 깨닫고 보니 날마다 탄력을 잃어가는 마음이 그저 괴로울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이전에 그렇게나 진지하고 절실했던 마음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을 깨닫고 한계란 걸 알게 되었을 때 휴학을 신청했다.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잃음의 연속이었던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기대했던 성과마저도 가져오지 않아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실제로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한심했다. 후회든 우울함이든 사실은 한심한 나 자신을 비켜가기 위해 생겨난 감정일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멈출 수 없어서 했었던 게임이 테트리스였었다. 하는 동안에는 생각을 잠시 멈출 수 있었으니까. 

 

어느 날, 테트리스에서 Game Over를 당하고는 문득 이런 감상이 들었다. 테트리스의 교훈은 '업적은 사라지고 실수는 계속 남아 괴롭힌다' 아닐까라고. 내가 인생을 그리 길게 살지는 않았지만 이것만큼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관통하는 문구도 없었다고 느꼈다.   

 

스스로를 책임지며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과 내가 그 무게를 버티기에 준비가 너무나도 안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들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답을 찾으려 책에서 깨달음을 얻으려 했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가장 먼저, 내 주변에서 가장 현명한 사고방식을 가진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이 친구가 내 질문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난 천재가 아니라서 알 수 없다. 그저 어차피 함께하는 시간에 나누는 가벼운 잡담처럼 질문해 보고 대답을 기다릴 뿐이다. 오랜 시간 후, 그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리셋해. 판 전체를 리셋하던가, 아니면 맘에 안 들게 망쳐진 부분은 잠시 내려놓고 내 손 안에서 다룰 수 있는 영역을 먼저 처리하던가. 내가 말하는 리셋이라는 건, 내가 어떤 영역과 사회에서 실수를 했고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을 때 Walk out(중단)하라는 거야.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분야, 집단, ...등의 여지 같은 것을 나는 '퇴로'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이 존재한다면 데미지가 크게 없어. 인간관계에서도 커리어에서도 새 게임을 시작하는 것은 완전 리셋이지만 판이 완전히 망하기 전에는 그 게임 내에서도 '와일드카드', '조커', '퇴로' 와 같은 개념이 존재하지 않지 않나?

 

뭔가 잘 처리된 부분은 아껴두었다가 망하면 거기로 간다거나 말이지. 예를 들어 테트리스 같은 게임은 뒤로 가면 갈수록 시간이 중요한 팩터이기 때문에 두뇌 처리 속도가 밀리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건 중요해. 그게 재기의 기회가 될 수 있거든. 인생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요약하면 '퇴로'의 존재에서 오는 여유가 실제로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거고. 완전히 일반론적인 statement는 내리기 쉽지 않지만, 보통 상황이 비가역적인 지경에 이르르거나 되돌이키는 데 드는 자원과 비용이 비경제적일 정도로 높아지면 나는 빠르게 포기하고 걸어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

 

 

난 돌아오는 게 없어도 인풋하게 되는 걸 '좋아한다'의 정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와 이 친구와의 관계는 이 표현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던진 질문에도 진지하게 고민해주기에, 내 주변에 이와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글을 쓰면서 이 친구와의 대화를 다시 떠올리니, 감사하다는 감정이 마음 한가득이다. 그저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존재들이 많지 않더라도, 그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런 존재 중 또 한 명이 얼마 전에 작고하신 류이치 사카모토님이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 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영화 <마지막 사랑>(1990년) 폴 볼스(Paul Bowles)

 

 

<Fullmoon>의 작곡 배경인 볼스의 이 말은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고, 내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졌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에 마음을 뺏기는 순간이 찾아온 것은 그래서였을까. 그 순간만큼은 마음 속의 상처에 대해 잊을 수 있었다. 상처를 받았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작고 소중한 순간들이 서로를 물들여,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더욱 성장시킨다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볼스의 한 구절을 영화 속에서 따와 샘플링해서 만든 <fullmoon>이라는 곡, 그리고 그린란드에서 눈이 녹아내리는 과정을 녹음하고 바닷물 속에 마이크를 담가보면서 <Out of Noise> 앨범을 제작하시는 모습들을 보며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 있고 그 소리들이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걸 나에게 보여주셨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마음 속 깊은 곳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는 것 같다. 가끔은 마치 단편 소설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멜로디는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낸다. 피아노 소리는 마음의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고,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 영화 속 화려한 장면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준다.

 

내 인식의 경계를 넓혀주신 존재로써 류이치 사카모토님에게는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Not everyone will understand your journey. That's okay. You're here to live your life, not to make everyone understand."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여정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뱅크시(Banksy)

 

 

마지막으로 뱅크시다.

 

대중들의 의식과 의견을 동요시키는 그의 능력은 미술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였다. 뱅크시는 그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를 두드러지게 하며, 전통적인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야와 관점을 제시하는 예술적 관점의 확장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나에게 있어서, 뱅크시의 작품이 어떤 공간에 존재하게 되는 순간부터, 그 공간 자체의 분위기가 변화하고, 기존의 예술과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발견할 때마다, 이는 지루함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냇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감사의 미로를 걷고 있다. 작은 파문처럼 나의 존재가 고요히 흔들리면서도, 그 안에서 나타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작고 소중한 순간들이 서로 엮여 감사의 미로를 조성하고, 나는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곤 한다. 사소한 것들에도 눈을 뜨며, 속삭이듯 감사하며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